요즘 뉴스를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경제뉴스에서는 경기침체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파산신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아우성인 반면 새로 나온 하이엔드 오토브랜드 제네시스는 없어서 못 판다는 소식도 함께 나온다. 그뿐인가?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얇아져서 소비가 급감하고 있다는 이코노미스트 보고서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지만 정작 저기 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들고 나오는 손님들은 도통 줄어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곧 죽어도 아이폰은 써야 하고 집은 없어도 제네시스는 타야 하는 이런 상황에 맞지 않는 제품 추종 심리현상을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라고 한다. 단순한 심리효과로 간단히 알고 넘어가도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파노플리 효과’에는 현대의 마케팅과 브랜드 메커니즘을 관통하는 인사이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 인사이트가 뭔지 함께 알아보자.
파노플리 효과 (Panoplie Effect) 뜻, 개념 정리
파노플리 효과란 무엇인가? 개념 정리부터 하자. 파노플리 효과란 사람들이 특정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같은 집단, 같은 부류라고 여기는 환상 또는 믿음을 갖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파노플리(panoplie)는 원래 프랑스어로 한 세트(set), 집합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예전에는 기사의 갑옷과 투구 한 세트(set)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근대 자본주의 소비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어떤 특정 집단과 연대감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특정 제품, 특히 명품 브랜드 제품의 쇼핑 목록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파노플리 효과’라는 말은 누가 처음에 썼나? 1980년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가 특정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특정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과시하는 것을 가리켜 ‘파노플리 효과 (effet de panoplie) ’라고 개념을 제시한데서 시작됐다.
브랜드에 숨겨진 파노플리 효과 이야기
중세시대까지 인류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았다. 그러던 것이 현대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왕권 신수설 따위는 없어졌지만 자본에 의해 보이지 않는 계급이란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이란 것은 소비 형태로 드러났기에 사람들은 소비에도 계급의식을 투영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현대 소비이론가인 콜린 캠벨(Colin Campbell)은 소비엔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맛본 즐거움을 현실에서 경험하려는 욕망이 담겨있다고 말했는데, 결국 상품은 상품 본연의 가치 혹은 기능 이외 욕망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제품 자체에서 만족을 찾기 보다는 제품이 가진 이미지로부터 만족과 위안을 얻는다고 콜린 캠벨은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대 기업들이 상품을 혹은 기업 자체를 브랜드화 하려는 이유와 전략의 한 축이 바로 파노플리 효과인 것이다. 현대의 기업들은 브랜드 포지셔닝을 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 왜일까? 단순히 좋은 이미지 혹은 잘 기억에 남기 위해서 그럴까?
기업의 브랜드는 상품의 특성을 규정함과 동시에 그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특징, 소비여력,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더 나아가 소비여력으로 규정할 수 있는 계급적인 특성까지 규정하기 때문이다. 명차 브랜드 ‘마이바흐’를 본다면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게 되는가? 대부분 마이바흐가 얼마나 좋은 차인지, 가격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삼성 이건희 회장이 타던 차를 바로 떠올리게 된다.
쪼금 가격을 낮춰서, 사업 규모가 쥐꼬리만한 스타트업 회사의 사장일지라도 리스로 제네시스는 꼭 뽑아서 타고 다니려 한다. 왜인가? 잘나가는 전문직 혹은 기업의 젊은 사장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기업 입장에서 바로 이런 파노플리 효과와 관련한 소비 심리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한 축인 것이다.
파노플리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하는 3가지 심리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파노플리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추가적인 사람들의 심리 현상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좋다. 파노플리 효과와 비슷한 맥락에서 제품 본연의 기능적 가치 외 소비자 집단을 의식한 소비 심리 현상은 스노브 효과, 베블런 효과, 밴드왜건 효과가 있다. 간단하게 각각의 개념을 살표보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아보자
스노브 효과 개념 정리
스노브 효과 (Snob Effect) 혹은 속물 효과는 특정 제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게 되면 어느 순간 그 제품의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Snob은 속물이라는 뜻인데, 계급이 존재하던 시절 다른 사람과 특히 계급이 낮은 사람들과 차이를 두고 싶은 속물 근성이 나타나 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 소비하는 현상을 말하며 백로 효과 라고도 한다.
베블런 효과 개념 정리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이 명명한 심리 효과다. 베블런 효과는 사람들의 선호가 제품이 아닌 제품의 가격에 직결되고, 가격에 따라 선호도가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즉, 높은 가격은 해당 재화를 구매하는데 있어 장해요인이 되지만 해당 재화를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와 같은 장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므로, 상품이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효용 이외에 추가적인 효용이 높은 가격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사치스러운 차들은 차의 성능과는 별개로 종종 그들의 가격 자체가 소망의 대상이 되는데, 그 높은 가격이 어느 정도의 신분을 나타내며 소비를 통해 신분 상승을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밴드왜건 효과 개념 정리
밴드왜건 효과란 미국의 하비 라이벤스타인의 네트워크 효과에서 처음 언급되었는데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 밴드왜건이 금광 발견 소문이 나면 요란한 음악을 연주해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편승 효과 또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는 어떤 선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정보가, 그 선택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말한다. 흔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 않던가? 막상 어떤 제품이 유행한다고 하면 별 생각 없이 해당 제품 소비에 편승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유행에 생각 없이 편승하는 심리도 있지만 추가로 자신이 속한 계층 및 그룹에서 낙오하거나 분리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바닥에 깔린 것이다.
계급주의의 또 다른 얼굴 ‘소비’
위에서 언급한 파노플리 효과, 소노브 효과, 밴드왜건 효과, 베블런 효과 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제품과는 상관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두번째는 바로 계급 혹은 사회 그룹의 매칭 시도이다. 글의 서두에 말한 것처럼 근대 이전까지 존재했던 계급사회에서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높은 계급을 갈망했고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차별을 두고 싶어했다.
그 상태로 현대 소비중심사회로 넘어오게 되었을 때 상품의 소비를 통해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파노플리 효과가 발생했으며 파노플리 효과를 바탕으로 다음의 3가지 효과가 동시다발로 발행하게 되는 것이다.
- 첫번째 자신은 낮은 계급의 대다수 대중들이 사용하는 상품은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 스노브 효과가 발생한다.
- 두번째 자신의 높은 계급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품과 상관없이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베블런 효과가 발생한다.
- 세번째 자신이 속한 전체 집단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은 심리로 인하여 일단 따라서 구매하는 밴드왜건 효과가 발생한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달콤한 당신의 이미지
파노플리 효과를 계급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소비를 통해 과시하는 것이 꼭 계급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에어조던 시리즈를 사는 사람은 어떤가? 계급이 아닌 농구에 대한 사랑, 자신의 우상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꿈, 라이프 스타일, 능력, 상태, 취미 등 다양한 영역을 소비에 투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광고가 대부분 브랜드를 소비하는 고객들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광고 모델 자체를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범주의 인물로 섭외하는 것이다. 한때 시크한 도시녀의 이미지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여배우 김남주, 그 김남주가 광고하는 ‘아이 키 크게 하는 영양제’ 브랜드는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스마트하고 똑 부러지고 잘난 엄마’ 그룹을 규정해준 것이다. 자 그럼 이런 식의 파노플리 효과를 활용한 실제 예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파노플리 효과 예시 “손흥민처럼 잘난 사람들만 타!”
파노플리 효과는 특히 고급 승용차 제품군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입 브랜드 차들은 심하다. 뭐 독일에서는 소나타급 승용차도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순간 비싼 차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요즘 광고하는 자동차 광고 중에는 손흥민을 앞세운 볼보가 눈에 띈다. 광고는 눈에 들어오는 카피도 없고 임팩트도 없다. 다만 손흥민이 눈에 보일 뿐! 손흥민 연봉이 얼마이던가? 잘나가는 당신이라면 이 차를 사라!
파노플리 효과 예시 “몸짱이세요?”
요즘 트레이닝복 얼만지 가격을 알고 있는가? 예전에는 노스페이스 정도가 등골 브레이커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트레이닝 웨어 브랜드가 우리를 괴롭힌다. 머 어쨌든 스포츠 웨어 브랜드 광고를 보자 하나같이 몸짱인 사람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몸짱 연예인들이 광고를 휩쓸고 있다.
이것은 몸이 잘난 사람들에 편승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이다. 사실 운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저렴한 트레이징 복을 두고 비싼 브랜드 이미지를 사고 있다. 왜? 난 미래에 그들과 같은 몸짱이 될 거니까!
파노플리 효과 예시 “허리 몇이야?”
혹시 게스(Guess)는 24인치 바지만 팔았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뭐 지금은 아니지만 그런 적이 있었다 일명 24인치 마케팅을 벌이던 때의 일이다. 24인치 마케팅이란 여성들이 유독 24인치의 허리사이즈를 동경하는 것을 보고 이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24인치 이상의 청바지를 생산하지 않는 마케팅을 전략이었다.
이런 마케팅으로 당시 게스는 날씬한 여성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게스 청바지를 구매한다는 것은 24인치의 개미허리, 최고의 몸을 가진 미녀라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파노플리 효과를 활용한 대표적인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파노플리 효과 예시 “대통령이 식사했던 곳”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 하노이의 한 식당에 들른 적이 있는데 간판에 요란하게 적혀 있던 문구와 사진이 기억난다. “이곳은 오바마 대통령이 식사를 한 곳” 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도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그래 그래 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쌀국수를 좋아할 수도 있고 혹은 거기가 너무나 맛있어서 소문 듣고 일부러 찾아와서 식사를 했을 수도 있다.
이것도 결국 파노플리 효과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왠지 대통령과 동급의 식사를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그런데 비단 대통령 뿐인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내 고향 맛집 TV 프로그램’이 방문 안 한 곳이 없고, 백종원이 다녀가지 않은 식당이 없다. 또 식당마다 벽면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연예인들이 싸인을 해놓고 갔는지… 이러한 행태들도 오바마 대통령이 다녀간 베트남의 식당과 별반 차이 없는 파노플리 효과를 활용 전략인 것이다.
파노플리 효과 예시 “악마는 프라다를 산다고?”
예전에 앤 해서웨이가 출연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란 영화가 떠올랐다. 사실 프라다랑 별 상관없는 영화인데 프라다가 주는 이미지가 상당히 강렬하다. 명품 Bag 하면 떠오르는 루이비통, 프라다, 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은 파노플리 효과를 적극 활용하는 마케팅의 대명사들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이 곳 최상의 계급에 위치한 사람임을 암시하는 온갖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보낸다.
모델은 항상 세계 최정상의 모델들이며 협찬이나 PPL도 최고의 작품, 최고의 배우들에게만 진행한다. 그뿐인가 럭셔리 브랜드의 파티 같은 이벤트에만 협찬 전시 등을 진행하며 매장도 대부분 강남에 두며 갤러리아, 현대 백화점 같은 럭셔리 백화점에만 입점한다. 가격도 물론 극강의 가격을 자랑한다. 일반인들의 접근 문턱을 높이면 높일수록 그들을 갈망하는 이들은 많아진다.